아파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던 날,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마치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처럼.
“이제 진짜 아파트 사는 거네. 축하해요.”
중개사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계약금 3천만 원.
내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었다.
문제는 하나였다.
아직 빌라가 안 팔렸다.
하지만 나는 애써 괜찮다고 생각했다.
요즘 부동산 분위기 나쁘지 않고, 가격도 싸게 내놨고,
중개사도 말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금방 나가요. 한 달이면 팔려요.”
그래. 한 달이면 팔리겠지.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빌라 아직 문의 없어요.”
부동산 사장님 전화였다.
“네? 한 건도요?”
“네… 요즘 빌라가 좀 많이 안 움직여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가격도 많이 내렸잖아요.”
“맞아요. 근데 요즘 사람들이 다 아파트만 보러 다녀요. 빌라는 전세도 잘 안 나가고…”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빌라 언제 팔린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곧 팔린대. 걱정하지 마.”
하지만 그 말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파트 중도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도금 1억 2천.
은행 대출을 받기로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DSR 때문에 대출이 생각보다 많이 안 나왔다.
은행 직원이 말했다.
“지금 소득이면 대출 최대 9천 정도 가능합니다.”
“아니 저는 빌라 팔면 되는데요?”
“빌라 매도 계약서 있으세요?”
“…아직 없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출 더는 어렵습니다.”
그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다.
빌라 안 팔리면 아파트 못 산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산기를 계속 두드렸다.
계산이 안 맞았다.
아무리 계산해도
돈이 1억 이상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돈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아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빌라 팔리면 된다니까.”
“근데 안 팔린다며!”
“팔린다니까 좀 기다려봐!”
“당신 맨날 그 말이야. 팔린다 팔린다. 언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내가 말했다.
“혹시… 계약금 날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순간 화가 났다.
“야, 그런 말 쉽게 하지 마.”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돈도 없으면서 아파트를 왜 계약해!”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다들 이렇게 갈아타는 거야!”
“다들? 다들 돈 있으니까 하지 우리는 없잖아!”
그날 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에서 잤다.
“사장님, 빌라 가격 더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얼마까지 생각하세요?”
나는 한참 말이 없었다.
처음 샀던 가격이 2억 8천.
지금 내놓은 가격이 2억 7천.
이미 천만 원 낮췄다.
“…2억 5천까지 내릴게요.”
전화기 너머로 중개사가 잠깐 조용했다.
“그럼 팔릴 겁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3천만 원 손해.
3천만 원이면
내가 1년 내내 모은 돈이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산 게 아니라
빚을 산 건 아닐까.
창밖을 보는데
내가 살고 있는 빌라가 보였다.
처음 이 집을 샀을 때
나는 분명 기뻤다.
“그래도 서울에 집 하나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집을 팔고
더 비싼 집으로 가려고 하는 걸까.
그날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아파트가 아니라
인생을 계약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계약은
취소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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