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은 미래의 나에게 미루는 청구서였다
아파트 가격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내 생활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뉴스 보는 게 아니라 부동산 앱을 켜는 일이 됐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도, 퇴근 후 소파에 앉아서도,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계속 아파트 가격을 보고 있었다.
“3개월 사이에 또 5천이 올랐네…”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중얼거리자, 옆에서 아내가 물었다.
“또 보고 있어?”
“응…”
“그래서, 살 수는 있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살 수 있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살 거야? 말 거야?’ 그걸 묻는 거였다.
나는 조용히 계산기를 켰다.
현재 자산 1억.
빌라 시세 2억 5천.
빌라 대출 1억 2천 남음.
빌라를 팔면 손에 남는 돈은 대략 1억 3천.
가지고 있는 현금 1억 합치면 2억 3천.
그때 내가 보고 있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6억 5천이었다.
부족한 돈 4억 2천.
결국 답은 하나였다.
대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은행 앱에 들어가서 주택담보대출이라는 걸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금리 4.1%.
대출 가능 금액 3억 8천.
화면을 한참 보고 있는데, 손이 약간 떨렸다.
3억 8천.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만져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돈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빌리면… 아파트를 살 수 있네?’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걸 빌리면… 나는 20년 동안 이걸 갚아야 하네.’
그날 밤, 나는 엑셀을 켜서 대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3억 8천 대출.
금리 4.1%.
30년 상환.
매달 상환액 약 185만 원.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185만 원.
지금 내가 내는 빌라 대출 원리금은 62만 원이었다.
거기에 관리비, 생활비, 아이 학원비, 보험료, 통신비…
아내가 내 옆으로 와서 물었다.
“얼마야?”
나는 엑셀 화면을 보여줬다.
아내는 한참 동안 숫자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바로 대답을 못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못 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제일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당신… 계속 일할 수 있지?”
아내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냥… 맞벌이 해야 될 것 같아서.”
“지금도 일하고 있잖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만약에 당신 일 그만두면… 대출 못 갚을 것 같아서.”
아내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나는 일 그만두면 안 되는 사람이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 그런 뜻 맞잖아.”
그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아내는 먼저 방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거실에 혼자 남아서 엑셀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인생을 담보로 잡히는 거구나.’
며칠 뒤,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가 또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대리 김성훈이 말했다.
“과장님, 아직도 안 사셨어요?”
“어…”
“지금 안 사면 진짜 못 사요. 저 이번에 하나 더 살까 고민 중이에요.”
“하나 더?”
“네. 전세 끼고 사면 돈 별로 안 들어가요.”
옆에 있던 박차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야, 너 그러다 한 방에 간다.”
김성훈이 바로 받아쳤다.
“차장님은 그래서 아직도 전세 사시잖아요.”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박차장 얼굴이 굳었다.
“전세 사는 게 뭐가 어때서.”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요즘 같은 때 집 없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거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밥만 먹고 있었다.
집 있는 사람.
집 없는 사람.
그때부터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기 시작했다.
이미 집 사서 집값 오른 사람.
그리고 아직 집 못 산 사람.
그리고 나는 후자였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아내가 말했다.
“오늘 엄마랑 통화했어.”
“어, 장모님 뭐래?”
“서울에 있는 이모 아들 있잖아. 이번에 아파트 샀대.”
“……그래?”
“근데 엄마가 그러더라.”
아내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희는 언제 아파트 갈 거냐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나는 갑자기 숨이 차는 것 같았다.
3층인데도 이상하게 힘들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신발장이 꽉 차 있어서 신발을 옆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아이 방에서는 인강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거실에서는 건조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빠, 민수는 아파트 살아. 거기 놀이터 엄청 커.”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 좋겠다.”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응. 나도 아파트 살고 싶어.”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계속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살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유튜브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장도 떠올랐다.
‘대출은 미래의 나에게 미루는 청구서입니다.’
나는 새벽 2시에 혼자 거실에 앉아서 생각했다.
아파트를 사면,
나는 매달 185만 원을 30년 동안 갚아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안 사면,
나는 평생 이 빌라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더 무서운 걸까.
대출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평생 아파트를 못 사는 게 더 무서운 걸까.
나는 그날 새벽, 결국 결론을 내렸다.
“빌라 팔자.”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됐다.
그때는 몰랐다.
이 선택이 맞는 선택인지,
아니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