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천이었다.
“급매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동산 앱에 올라온 더 싼 매물을 보고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2천 싸던 매물은 사라지고 새로운 매물이 올라왔다.
내가 산 가격보다 3천 싼 가격.
그때부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눈 뜨면 부동산 앱부터 켰다.
그리고 매일 같은 걸 확인했다.
내가 산 아파트 가격.
한 달 뒤
부동산 앱 시세 그래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 내가 계약한 가격: 5억 8천
- 현재 매물 최저가: 5억 3천
5천 떨어졌다.
계약금 3천 + 가격 하락 5천
이미 8천만 원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는 중개사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요즘 왜 이렇게 가격이 떨어져요?”
“금리 때문에 그래요. 요즘 매수자가 없어요.”
“그럼 더 떨어질 수도 있어요?”
잠깐 정적이 흐르고, 중개사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은 좀 약세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약세.
그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을 해야 했다.
“집값 좀 떨어졌어.”
아내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얼마.”
“…한 5천.”
아내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지금 팔면 우리 얼마 없어져?”
나는 계산을 해봤다.
- 계약금 3천 (이미 냄)
- 집값 하락 5천
- 중개수수료, 세금
- 빌라 손해 예정 3천
나는 계산하다가 멈췄다.
“…1억 정도.”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1억?”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만두면 1억 날리는 거네?”
“…어.”
아내가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은 기쁜 웃음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우리 10년 모으면 1억인데.”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정말이었다.
우리가 10년 동안 모은 돈이
지금 한 번의 선택 때문에 날아가게 생겼다.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집에서 부동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만 했다.
“라면 먹을래?”
“응.”
“불 꺼?”
“응.”
대화가 점점 사라졌다.
어느 날 밤,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나 요즘 무서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표정이 너무 무서워.”
“…내 표정이 왜.”
“맨날 무슨 생각하는 사람 같아. 말 걸기가 무서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나는 매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잘못된 선택이면 어떡하지.”
중도금 날
결국 중도금 날이 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중도금을 넣는 날.
이 돈을 넣는 순간
이 계약은 거의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은행 창구 앞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말했다.
“중도금 실행하시겠습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머릿속에서 숫자가 계속 돌았다.
- 지금 포기 → 3천 손해
- 계속 진행 → 집값 더 떨어지면 손해 얼마인지 모름
- 빌라 아직 안 팔림
- 대출 이자 매달 150
- 내 월급 320
직원이 다시 물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행복해야 집이 집이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집을 사는 게 아니라
불안을 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중도금 넣었어?”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넣었어.”
아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화도 안 냈다.
그냥 조용히 말했다.
“이제 진짜 되돌릴 수 없는 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짧았다.
“그럼 이제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기쁜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니고,
그냥 체념한 말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핸드폰으로 부동산 앱을 켰다.
그리고 내가 산 아파트를 다시 봤다.
최저가 매물 5억 2천.
나는 한참을 그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못 산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