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를 산 남자 – 6화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천이었다.

“급매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동산 앱에 올라온 더 싼 매물을 보고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2천 싸던 매물은 사라지고 새로운 매물이 올라왔다.

내가 산 가격보다 3천 싼 가격.

그때부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눈 뜨면 부동산 앱부터 켰다.
그리고 매일 같은 걸 확인했다.

내가 산 아파트 가격.


한 달 뒤

부동산 앱 시세 그래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 내가 계약한 가격: 5억 8천
  • 현재 매물 최저가: 5억 3천

5천 떨어졌다.

계약금 3천 + 가격 하락 5천
이미 8천만 원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는 중개사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요즘 왜 이렇게 가격이 떨어져요?”

“금리 때문에 그래요. 요즘 매수자가 없어요.”

“그럼 더 떨어질 수도 있어요?”

잠깐 정적이 흐르고, 중개사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은 좀 약세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약세.
그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을 해야 했다.

“집값 좀 떨어졌어.”

아내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얼마.”

“…한 5천.”

아내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지금 팔면 우리 얼마 없어져?”

나는 계산을 해봤다.

  • 계약금 3천 (이미 냄)
  • 집값 하락 5천
  • 중개수수료, 세금
  • 빌라 손해 예정 3천

나는 계산하다가 멈췄다.

“…1억 정도.”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1억?”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만두면 1억 날리는 거네?”

“…어.”

아내가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은 기쁜 웃음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우리 10년 모으면 1억인데.”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정말이었다.
우리가 10년 동안 모은 돈이
지금 한 번의 선택 때문에 날아가게 생겼다.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집에서 부동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만 했다.

“라면 먹을래?”
“응.”
“불 꺼?”
“응.”

대화가 점점 사라졌다.

어느 날 밤,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나 요즘 무서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표정이 너무 무서워.”

“…내 표정이 왜.”

“맨날 무슨 생각하는 사람 같아. 말 걸기가 무서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나는 매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잘못된 선택이면 어떡하지.”


중도금 날

결국 중도금 날이 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중도금을 넣는 날.
이 돈을 넣는 순간
이 계약은 거의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은행 창구 앞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말했다.

“중도금 실행하시겠습니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머릿속에서 숫자가 계속 돌았다.

  • 지금 포기 → 3천 손해
  • 계속 진행 → 집값 더 떨어지면 손해 얼마인지 모름
  • 빌라 아직 안 팔림
  • 대출 이자 매달 150
  • 내 월급 320

직원이 다시 물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행복해야 집이 집이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집을 사는 게 아니라
불안을 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중도금 넣었어?”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넣었어.”

아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화도 안 냈다.

그냥 조용히 말했다.

“이제 진짜 되돌릴 수 없는 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짧았다.

“그럼 이제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기쁜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니고,
그냥 체념한 말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핸드폰으로 부동산 앱을 켰다.
그리고 내가 산 아파트를 다시 봤다.

최저가 매물 5억 2천.

나는 한참을 그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못 산 걸지도 모르겠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