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티는 사람
이자는 생각보다 빨리 올랐다.
처음 대출 받을 때 은행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은 금리가 조금 높은 편이지만, 나중에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때 나는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만 들었다.
‘더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는 듣지 않았다.
금리가 0.5% 올랐을 때는 버틸 만했다.
1% 올랐을 때는 좀 아프기 시작했다.
2% 올랐을 때는 현실이 됐다.
매달 이자 150 → 210 → 260
어느 날 월급이 들어왔는데
통장을 한참 쳐다봤다.
월급 320
이자 260
관리비 20
생활비 60
남는 돈이 없었다.
진짜로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진짜로 아무것도 안 샀다.
외식도 안 하고
옷도 안 사고
여행도 안 가고
주말에 그냥 집에만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나도 그게 궁금했으니까.
회사에서 들려온 말
그리고 더 안 좋은 일은 꼭 같이 온다.
회사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소문이었다.
“요즘 회사 어렵대.”
“이번에 희망퇴직 받는대.”
“이번 달 실적 안 좋으면 조직 줄인대.”
나는 그냥 남 얘기인 줄 알았다.
어느 날 팀장이 나를 부르기 전까지는.
“요즘 회사 상황 안 좋은 건 알지?”
“…네.”
“혹시 이직 생각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직 생각 있냐는 말은
나가라는 말이랑 거의 비슷한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닌데… 만약 상황 안 좋아지면 정리 대상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미리 얘기해주는 거야.”
집을 사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 그거였다.
“나 이제 회사 그만두면 진짜 끝인데.”
집 사기 전에는 회사가 싫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라
회사를 붙잡고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결국 터졌다
그날 집에 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물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아니, 그냥 좀 바빠.”
아내가 나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회사 무슨 일 있지.”
“…아니라니까.”
“당신 요즘 맨날 표정이 그래.”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럼 내가 웃고 다녀? 지금 상황에?”
아내 표정이 굳었다.
“나한테 왜 화내.”
“화내는 거 아니야.”
“화내는 거 맞거든?”
나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나도 지금 힘들어.”
아내가 바로 말했다.
“나도 힘들어.”
순간 둘 다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아내가 처음으로 그 말을 꺼냈다.
“그때… 집 사자고 한 거 당신이었어.”
그 말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지금 그 얘기 왜 해.”
“아니, 그냥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 얘기 하면 뭐 어떡하자는 건데!”
“어떡하자는 게 아니라… 나도 무섭다고!”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맨날 돈 얘기, 대출 얘기, 이자 얘기… 나 이제 숨 막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내가 울면서 말했다.
“당신 요즘 맨날 계산기만 두드려. 사람이 아니라 기계 같아.”
그 말이 진짜 아팠다.
나는 그냥 조용히 말했다.
“…그럼 어떡해. 내가 계산 안 하면 누가 해.”
아내가 울면서 말했다.
“집이 우리 인생이야? 우리 맨날 집 얘기만 하다 죽을 거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각자 다른 방에서 잤다.
새벽 2시
잠이 안 와서 거실로 나왔다.
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핸드폰으로 부동산 앱을 켰다.
내가 산 아파트 시세
6억 3천
올라 있었다.
분명히 올라 있었는데
왜 하나도 기쁘지가 않은지 모르겠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 때문에 내가 망할 수도 있겠다.”
그때 안방 문이 열렸다.
아내가 나왔다.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참 서 있었다.
아내가 먼저 말했다.
“…미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아내가 말했다.
“우리 싸우지 말자. 지금 우리 편 서로밖에 없잖아.”
그 말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로 그 말이 맞았다.
회사도 내 편 아니고
은행도 내 편 아니고
집값도 내 편 아니고
서로밖에 없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 회사 잘릴 수도 있어.”
아내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더 아껴 쓰면 되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짜 무서워졌다.
아껴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이렇게 생각했다.
- 회사 안 잘려야 한다
- 금리 더 오르면 안 된다
- 빌라 빨리 팔려야 한다
- 아파트 가격 떨어지면 안 된다
내 인생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
집을 산 사람은 사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구나.
버티는 사람.
그게 그때부터 내 직업이었다.
서울 아파트를 산 남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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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아파트를 산 남자 – 9화 – 2억 2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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