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를 산 남자 – 3화

집을 사기로 결정하자,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되었다

빌라를 팔기로 마음먹은 다음 날, 나는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 집 좀 내놓으려고요.”

수화기 너머로 중개사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과장님, 잘 생각하셨어요. 요즘 빌라는 빨리 파셔야 돼요. 아파트로 갈아타시려고요?”

“네… 그럴까 해서요.”

“지금 갈아타기 하시는 분들 많아요. 잘 오셨어요, 타이밍 괜찮아요.”

타이밍.

그 말이 참 이상했다.
주식도 아니고, 집을 사는데 타이밍이라니.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가 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말했다.

“나 오늘 부동산에 집 내놓는다고 했어.”

아내가 젓가락을 멈췄다.

“……진짜로?”

“응. 일단 팔아보고, 아파트 알아보려고.”

아내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당신, 확신 있어?”

나는 바로 대답을 못 했다.

확신.
그게 있었으면 이렇게 무섭지도 않았을 거다.

“확신은 없지… 근데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그래도 대출이 4억이야.”

“3억 8천이야.”

“그게 그거지.”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 요즘 맨날 부동산 영상 보고, 아파트 가격만 보고… 사람 좀 변한 거 알아?”

나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변한 게 아니라 현실을 보는 거지.”

“현실? 현실은 당신 월급이야.”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내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현실은 아파트 가격이 아니라, 내 월급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현실을 보고 있었다.

집 가진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의 차이.
그게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며칠 뒤, 회사에서 박차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너 집 산다며?”

“아직 사는 건 아니고… 빌라 팔고 알아보려고요.”

박차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내가 진짜 솔직하게 말해줄까?”

“네.”

“지금 사지 마.”

“……왜요?”

“금리 올라가잖아. 금리 올라가면 집값 떨어져. 그때 사.”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고 있었다.

박차장은 계속 말했다.

“지금은 끝물 같아. 꼭대기에서 사는 것 같아서 불안해.”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꼭대기에서 사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김성훈 대리는 정반대 이야기를 했다.

“과장님, 진짜 사실 거면 빨리 사세요.”

“왜?”

“지금 다들 금리 때문에 무서워서 못 사고 있잖아요. 그럴 때 사는 거예요.”

“…….”

“다들 무서워할 때 사서, 다들 사고 싶어 할 때 파는 거예요. 그게 투자예요.”

나는 점점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지 말라는 사람도 있고,
지금 사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는 딱 한마디만 했다.

“당신은 누구 말 듣고 살 거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지금 누구 말 듣고 인생에서 제일 큰 결정을 하려고 하는 걸까.

유튜브?
회사 동료?
부동산 중개사?
뉴스?
아니면 그냥 분위기?

그날 밤, 나는 혼자 베란다에 서서 밖을 한참 내려다봤다.
빌라 주차장에는 차가 빽빽하게 서 있었고, 전봇대에는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는 불이 규칙적으로 켜져 있었다.
똑같이 생긴 건물, 똑같은 창문, 똑같은 불빛.

그걸 한참 보고 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다 저기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걸까.’


일주일 뒤, 빌라를 보러 온 사람이 나타났다.

30대 초반 신혼부부였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남자가 물었다.

“주차는 괜찮아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늦게 들어오면 조금 멀리 대야 할 때도 있어요.”

그 부부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집은 괜찮네요.”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 집을 팔고 싶었는데,
막상 누가 산다고 하니까 또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서 6년을 살았다.
우리 애가 여기서 초등학교 들어갔다.
여기서 코로나도 버텼고, 여기서 승진도 했다.

현관문에 있는 작은 낙서 자국도,
거실 벽에 있는 찍힌 자국도,
베란다에 있는 작은 화분도 다 우리 시간이었다.

그날 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집 팔리면, 진짜 다른 집 가는 거네.”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무서워?”

아내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섭지. 근데… 여기 계속 사는 것도 무서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여기 계속 사는 것도 무섭다.

그게 우리가 집을 사려고 하는 진짜 이유인지도 몰랐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멈춰 있는 것 같아서.

남들은 다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우리만 여기 그대로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집을 사려고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과장님, 아까 그 부부가 집 사겠다고 하는데요. 계약금 걸겠대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이제 진짜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빌라가 팔리면,
우리는 무조건 아파트를 사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아파트 매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도보 10분.
초등학교 5분.
25평.
가격 6억 4천.

사진을 보고 있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아파트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선택이 될지,
아니면 가장 후회하는 선택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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